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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돈도 없으면서 왜 미술을 했을까?” – 그 시절 내가 묻고 싶던 질문

by 아트N에셋 2019. 1. 17.

 

“돈도 없으면서 왜 미술을 했냐고요?” 

갖은 재능이 미술뿐이라 우여곡절 끝에 미대에 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한 학기 등록금만 해도 500만 원이 넘었다. 거기에 교재비, 교통비, 재료비, 식비, 휴대폰 요금, MT비, 과잠바, 학생회비까지… 모두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부담이었다.

어울리지 못했던 신학기, 늘 시간에 쫓긴 나날들

신학기엔 모두가 친해졌지만, 나는 MT를 가지 않아 그 무리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잦은 야작(야간작업) 덕분에 4년 동안은 무탈히 어울리며 지냈다. 그럼에도 늘 삶은 불안했고,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에 나가야 했다. 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학점을 위한 안전한 작업을 해야 했다. 만족보단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는 것이 우선이었다.

돈이 없어 작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날들

재료비를 아끼려고 선배들이 쓰다 남긴 재료들을 모아 다시 썼다. 자연에서, 폐기장에서 재료를 구했다. 그래서일까, 내 작품은 빛나지 않았고, 늘 후줄근했다. 자취방에서 야식을 시켜 먹으며 밤을 새던 친구들이 부러웠고, 해외 교환학생을 신청하거나 전시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때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게 돈도 없으면서 왜 미술을 시작했을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 꿈 하나 때문에, 일주일에 알바를 두 세개씩 뛰며 작업과 수업을 병행했다. 모두 떠난 작업실에 홀로 남아 밤새 작업했고, 새벽 첫차가 다닐 때쯤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나오면 겨우 샤워를 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결국 해낸 나, 그리고 지금 남은 한 가지 후회

졸업을 했고, 40명 중 단 2명만 교직이수를 복수전공으로 졸업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다. 졸업과 동시에 가장 먼저 서울의 사립학교에 취업한 사람도 나였다. 시간은 지나고 형편은 나아졌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건 음식도, 여행도, 해외 경험도 아니다.

정작 아쉬운 건, 그때 원없이 내가 하고 싶은 창작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는 것...

  • 조금 더 자유롭게, 내 안의 이야기를 했더라면…
  • 조금 더 용기 내어 하고 싶은 것을 시작했더라면…
  • 그 순간의 기록들을 남겨두었더라면…
그 기억들이 지금 와서 가장 크게 나를 울린다.

그러니,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계속 전진하고 있으니, 의심하지 말길 바란다.

현실을 책임지되, 당신의 생각을 지금 이 순간 ‘창작’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라.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땐… 이미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갖은 재능이 미술뿐이라 우여곡절 끝에 미대에 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500만원이 넘는 

한학기 등록금, 교재비, 교통비, 재료비, 식비, 휴대푠비, mt비, 과잠바, 학생회비

이 모든 것이 내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이었다.

 

신학기가 되어 모두가 친해졌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MT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잦은 야작 덕분에 4년이란 시간동안 잘 어울리고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내 삶은 불안했다.

수업이 끝나면 알바를 가야했기에 늘 시간에 쫓겨 살았다.

 

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학점을 받기위해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늘 안전한 작업.. 

하지만 만족할 수 없는 작업을 했다.

 

재료비를 아끼려 

선배들이 쓰다버린 재료들을 알뜰히 모아 재활용하거나

자연 또는 폐기물 수합장에서 재료를 구해 작업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작품은 반짝이는 동기들의 작품과 달리

후줄근해 보였다.

 

학교 인근에 자취방을 얻어 밤새 어울려 작업하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방학이되면 견물을 넓히려 여행을 가고,

자신있게 해외교환 학생을 신청하고,

먹고 싶은 야식을 자유롭게 주문하던 친구들의 형편이 부러웠다.

 

그러게, 왜 돈도 없으면서 미술을 시작했는지...

 

그 꿈때문에 일주일에 알바를 두개씩 뛰면서 밤낮없이 작업과 수업을 들었다.

모두 떠난 시간, 고요한 작업실에 홀로 남아 숨죽여 작업을 했다.

그러다 새벽 첫차가 다니고, 청소해주시는 이모님들의 기척이 들리면

꾹 참았던 볼일을 보기위해 화장실로 뛰어가곤 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졸업을 하게되었고,

처음 교직이수를 함께 시작한 40명 동기 중 단 2명이 교원자격을 취득하였는데

그 중 한명이 나였다.

 

제일 먼저 서울에 있는 사립교단에 취업한 이도 나였다.

 

결국 시간은 지나고, 형편은 점차 나아진다.

돌이켜 아쉬운 것을 생각해보니 교우관계도 맛있는 음식도

해외교환을 못간 일이나 마음 것 놀지 못했던 일,

재료를 살 수 없었던 혀편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왜 그때 조금 더 자유롭고, 좀 더 고민하고,

하고 싶었던 창작물을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때의 생각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록하지 못한 것,

할 수 있었지만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들..

 

지나고보니 가장 아쉬운 기억이다.

그러니 주저말고 창작하기를 바란다.

 

당신은 계속 전진하고 있으니, 의심말길 바란다.

현실을 책임하되, 당신의 현재 주어진 시간동안

당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에 주저말고 "창작"했으면 좋겠다.

 

그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 머지않은 미래에 알게 될 땐

이미 되돌릴 수 없을테니말이다.

 

출처 : 페이스북 페이지 - 미술인이 알아야 할 세상물정